2009년 06월 10일
アホすぎる
오늘 나의 일정은 학원(종각) ㅡ 용산 ㅡ 씨너스 단성사. 학원은 아침 11시, 용산은 2시, 단성사는 7시라서 용산과 단성사 사이에 시간이 엄청 뜨는 스케줄이다. 학원은 11시 다음에 2시 반이 있긴 하지만, 학원 마치고 4시로 용산 일정을 옮기기에는 좀 난감한 사연이 있어서 혼자 열심히 머리를 짜낸 끝에 용산(1시 반) ㅡ 종각 ㅡ 씨너스로 바꾸기로 했다.
용산 1시 반까지는 무사히 클리어. 일을 마치고 나오니 1시 45분이었다. 냅다 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면 2시까지는 힘들지 몰라도 2시 10분까지는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열라 뛰었다. 핸드폰으로 지하철 노선도 확인할 시간도 없이 ‘덕소행 대기중’이라는 글자만 보고 후다다닥 뛰어 내려가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순간 뭔가 모를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10분이나 출발하지 않는 지하철. 2시 10분에는 도착하리란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2시에 출발을 하는 것이었다. 다음역은 이촌. 그리고 그 다음은 서빙고. 서빙고? 서빙고가 어디임? 깜짝 놀란 나는 일단 내렸다. 이촌까지는 뭔가 모르게 익숙해서 깨닫지 못했는데 서빙고에 내려서야 주변의 썰렁한 풍경을 보고 깨달았다. 아차, 덕소는 1호선 끝이 아니라 중앙선 끝이었구나. 다시 용산으로 돌아가 종각으로 가자. 2시 10분은 무리지만 30분까지는 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건너편의 전광판에 ‘용산행 왕십리 출발’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여태 중앙선 때문에 엿먹었던 기억들이 아련하게 떠올렸다. 예전에 옥수에서 환승할 때 중앙선이 20분이나 안 오는 바람에 10% 수수료를 물고 KTX를 취소한 후 다시 고속터미널로 돌아가는 삽질을 한 적도 있었지. 제기랄. 차라리 그대로 옥수로 가서 종로3가로 갔다면 30분까지는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힘이 쫙 빠진 난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아버렸다. 다시 옥수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해도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았지만 가방 속에 든 책을 꺼낼 기운도 나지 않았다. 나의 머리는 정녕 장식품이란 말인가. 왜 서빙고란 말에 무조건반사로 뛰어내렸던가. 그 다음 수업은 7시 반. 하지만 단성사 영화는 7시다. 학원 수업은 하루에 만삼천원. 영화는 공짜. 혼자였다면 취소하고 학원을 갔겠지만 약속한 친구가 있다. 내가 보자고 난리쳐놓고 내 멍청한 짓으로 민폐를 끼칠 수는 없지.;; 하아. 서울 생활이 벌써 몇 년인데 지하철을 헷갈려 학원을 못 가다니. 이건 뭐 아메바도 아니고;; 옥수로 가서 학원을 가면 3시 경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시 ~ 3시 40분 수업에 한 시간 지각이라니. 선생님이 쫓아내진 않겠지만 내가 스스로 설정해 놓은 지각 데드라인은 30분. 차마 한 시간이나 늦어놓고 문을 빼꼼 열고 들어갈 정도로 나의 얼굴은 두껍지 못하다. 할 수 없지. 오늘은 학원 포기. 아깝도다 만삼천원. 게다가 하필이면 학원이 금요일에 휴강. 이런 게 바로 엎친 데 덮친 격. 내 기억력은 알코올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휘발성을 자랑하는지라 분명 월요일에 학원을 가면 홀라당 다 까먹어서 어버버버거릴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혼자 공부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의지가 굳건하냐하면 그렇지도 않고. 한 10분쯤 멍하니 앉아있다가 괜히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해 징징거리면서 일어설 기운을 되찾았다.
전화하는 사이 중앙선이 들어와, 옥수로 가서 3호선을 기다리는데 진동이 느껴졌다. 꺼내보니 번호가 찍혀야 할 자리에 ‘표시금지’가 떠 있었다. 누구지 싶어서 받았더니 우체국인데 내가 찾아가야 할 물건이 있으니 빨랑 찾아가라는 예쁜 기계언니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이, 보이스피싱 티가 너무 팍팍 나잖아. 요상 얄라구진 번호가 떠도 차라리 번호 표시를 하는 게 14.7배쯤 덜 수상해 보이지 않겠니? 평소 같으면 그냥 끊었겠지만 기분이 완전 멜랑꼬랑지한 상태라 상담원 연결을 해서 ‘인생 그렇게 살면 재밌냐, 이 섀키럽아? ^-^ㅗㅗㅗㅗㅗㅗ’라고 상콤하게 한마디 해주려고 0번을 눌렀다가 지하철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냥 끊었다.
어떤 단어를 그냥 아는 것과 뜻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뭔 소린가 싶은 분들을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난 어릴 때부터 ‘속이 쓰리다’와 ‘배가 아프다’라는 단어를 둘 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내 위가 쓰려보기 전까지는 ‘속이 쓰리다’는 단어 뜻을 이해하지도, 언제 써야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일본어 중에는 ‘アホすぎる’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잠깐. 일본어를 모르는 대다수의 분들을 위해 해설을 하자면.
* アホ(아호) : 바보멍청이해삼멍게말미잘축구. 일본어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들 알고 있는 ‘바카’와 같은 뜻으로 주로 오사카 지방에서 쓰는 듯. 바카 대신 굳이 아호를 쓴 이유는 ‘바카스기루’보다 ‘아호스기루’가 내 귀에 익숙해서.
* すぎる(스기루) : ~하는 것이 지나치다. 일본어 하는 사람끼리 있을 경우, ‘아, 완전 난감스기루야.’, ‘너 오늘 예민스기루하다.’등으로 글로벌하게 활용할 수도 있지만, 죽고 나서 세종대왕 할아버지에게 맞기 싫은 사람은 쓰지 말자.
위의 설명으로 두 단어를 합친 アホすぎる가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아셨으리라 믿는다. 난 이 말을 듣기만 했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역시 내가 이 말을 알고만 있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난 오늘 나의 행적으로 이 말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 것 같다. 서빙고에서 뛰어내려 건너편을 넘겨다 본 순간 내 머릿속에 이 말 밖에 안 떠오르더라. 난 오늘 만삼천원과 바꾸어 アホすぎる란 말뜻을 완전히 파악해버렸다.
오래 전부터 여기 오시던 분들은 과거 내가 얼마나 시트콤스러운 인생을 살았는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여러 이유로 포스팅 횟수는 줄었지만, 그래도 오프라인에서 꾸준하게 레전드를 만들어내며 시트콤인생을 영위하고 있는 중입니다.ㄳ
# by | 2009/06/10 16:07 | 외계인 지구 정복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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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라면 연식글로브의 아호다나 - 소다요아호다요 가 떠오르는(...모르시려나;)
개그 콤비인가. 그냥 방송인인가. =_=;;;
만담하는 코미디언 콤비인가요?? 만담이라면 한 번 보고 싶은데.
'바카'는 후르츠 바스켓에서 유키와 쿄우가 잘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ㅅ')a 오사카에서는 저렇게 쓰는군요; 정말 몸으로 깨달음을 얻으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ㅠㅠ)
당장 이 포스트만 해도 맞춤법, 띄어쓰기 틀린 게 얼마나 많을까요. OTL
....뭐, 그래도 원래 몸으로 깨치면 안 까먹는다고 하니까요. 아하하하.
안 까먹을 뿐, 다시 똑같은 짓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긴 하지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