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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bye PM3:00

 

스타벅스를 가는 여자들을 된장녀라고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스타벅스의 커피는 저렴한 편이다. 체인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는 보통 기본이 5천원인데 비해, 스타벅스는 통신사 할인을 적용하면 무려 바닐라 라떼 그랑데 사이즈가 3800원이니 부담없이 갈 수 있는 편이다. 그뿐인가, 3800원에 많은 양의 음료와 안락한 의자, 무선 인터넷과 노트북용 전기, 냉/난방. 시간만 잘 맞춰가면 조용하기까지 하다. 이게 어째서 돈지랄인가. 그랑데 사이즈 하나 시켜놓고 세네시간 개기는 것이 집에서 세네시간 뒹구는 것보다 싸게 먹힐 거다.

그래서 바로 집 앞에 있는 PM3:00라는 카페는 거들떠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스타벅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온 후로도 한참이나 안 가던 이곳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인터넷이었다. 친구가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주말이면 친구와 만나곤 했다. 내가 그 동네로 가기도 하고 친구가 오기도 했는데 만나서 놀았던 건 아니다. 친구는 자기 할 일을,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적당히 중간중간에 수다 좀 떨어주고 저녁이 되면 밥을 먹고 헤어졌다. 그 친구가 우리 동네로 오던 어느 날, 친구는 레포트를 써야 한다며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왔다. 인터넷이 필요했지만 손바닥만한 우리 동네 스타벅스는 이미 사람들이 득시글득시글거려 자리가 없었다. 옆에는 다른 카페들도 있었지만 하나 같이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그 돌덩이 같은 노트북을 들고 온 동네를 걸어 돌아다니다가, 이제는 인터넷 따위 아무래도 좋다 그냥 보이는 곳 들어가자는 생각에 집 앞의 PM3:00에 들어갔다. 혹시나 인터넷이 되냐고 묻자 점원은 아주 밝은 표정으로 당연히 되죠, 라고 대답했다.

인터넷은 무지 빨랐다. 스타벅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창 하나 띄우고 다른 짓 한참해야 접속이 됐지만 여기는 그런 거 없다. 말 그대로 광속이었다. 게다가 스타벅스보다 훨씬 조용하고 넓고 깨끗하고 채광도 좋고 화장실도 반짝거렸다. 시종 조용한 뉴에이지 음악이 틀어져 있고, 해가 지면 스크린을 내려 음악회 영상까지 틀어주는데다 책도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북카페더라;;) 가격이 썩 저럼하지는 않았다. 엔젤리너스는 점심 때 커피와 샌드위치 세트가 5500원인데, 이곳은 8000원. 속도 훨씬 빈약했다. 하지만 이렇게 쾌적한 공간과 편안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리필도 제깍제깍 잘 해줬다. 8000원이라고 해도 나는 한 번 가면 한나절을 죽치고 앉아있는데다 커피는 세 잔씩 마셔대는 (주인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을지도 모를)손님이었으니 별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친구와 나는 주말마다 이곳을 찾았다. 친구가 없을 때도 혼자서 가곤 했다. 특히 평일 점심에는 손님이라곤 나와 대한민국에서 치맛바람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줌마들 두어팀만 있어서 제법 조용했다. 참 마음에 들었고, 다시 이사를 가면 그리워질 곳 1순위로 내 속에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점점 바빠지면서 그 곳을 찾지 않게 되었다. 준비해서 나가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바빴다고 해야하나.

어느 날 카페가 살짝 변했다. 커다란 유리창에 물감으로 자전거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그 그림과 똑같은 자전거를 가져다 세워놓았다. 그 다음에는 유리창 구석에 소화기를 그려놓고 그 그림에 맞춰서 소화기 위치를 옮겼다. 유리창이 좀 썰렁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예쁘게 변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바빠서 가진 않았지만;;;;;;;;) 그 다음에는 웬 아저씨 그림이 그려지더니 유리창 전체에 커피라는 글자가 써졌다. 장사가 잘 되는지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문을 닫았다. =_=;;; 당황스러웠다. 어느 날 불이 안 켜져 있기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게 안이 난리도 아니었다. 난장판이 된 가게를 보며 돈을 빌려서 꿈에 그리던 카페를 차렸는데 워낙 땅값 비싼 동네라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서 결국 빚을 갚지 못해서 돈을 빌려준 깍두기 형님들이 찾아와 가게를 뒤집어 엎어버린게 아닐까 하는 방정맞고 3류 소설 같은 생각을 애써 부정했다. 왜냐하면 문 닫기 바로 직전까지 너무 열심히 새로 그림을 그리며 인테리어를 하셨으니까. 빨리 다시 문을 열기를 바랐건만, 내 바람과는 달리 카페는 완전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웬 공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내장공사라고 믿고 싶었다. 금방 닫을 가게가 왜 유리창에 그림을 그리고 그 난리를 쳤겠는가. 한동안 다른 길로 다니다가 다시 그 앞을 지나가면서 보니, 테라스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장사가 잘 되서 테라스를 만들려는 거였나보다. 

하지만 아니었다. 테라스를 만들더니 가게 안쪽에 벽을 하나 만들고 문을 새로 내는 것이었다. 앗! 역시 돈이 없어서 카페 규모를 줄이려는 건가. 그래 뭐, 좀 줄이면 어때. 문만 열어줘. 그러나 애써 다시 PM3:00가 돌아올 것이라 믿으려는 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왼쪽에는 부동산 간판이 걸리고 오른쪽에는 마치 미용실 같은 느낌의 내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늘, 문을 닫은지 한 두 달 정도 됐을까. 그 자리에 전당포가 생겼다. 전당포랑 부동산이 왜 테라스까지 만들며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거냐!! 아무튼 죄와 벌이나 백야행 같은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음침한 전당포와는 달리, 나 같은 영어울렁증 환자는 뭐라 읽어야 될지도 알 수 없는 알파벳이 나열된 간판에, 전당포라고 쓰여진 세로 간판이 없었다면 무슨 해외 명품 브랜드라고 착각할 정도의 삐까뻔쩍한 가게였다. 역시 우리나라 최고로 땅값 비싼 동네, 전당포부터가 뽀대가 다르다.

유리창에 열심히 그림 그리고 자전거 갖다 놓은 것은 촛불이 꺼지기 전에 확 타오른다는 뭐 그런, 마지막 발버둥이었나. PM3:00가 없어진 것도 섭섭하지만 그 자리에 생긴 게 현실감 철철 넘치는 부동산과 전당포라는 것도 슬펐다. 이거나 저거나 돈 벌려고 하는 가게이고 딱히 전당포나 부동산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뜻은 없지만 그래도 내 안에서 카페와 전당포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상반된 두 단어만큼이나 크나큰 차이가 있다. 어쩐지 나만의 조용한 파라다이스가 사라지고 고층 빌딩이 들어선 기분이다. 뭐든지 있다가 없어지는 건 슬프다. 웬지 바쁘다고 외면한 동안 열심히 가줬으면 혹시 계속 있어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안타깝다. 그러게 사람은 있을 때 잘해야 하는 거다. 늦어도 내년 초에는 이사를 가겠지만, 이제는 이사를 갈 때 미련 둘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지나다닐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건데 글로 써놓고 보니 묘하게 손발 오글거린다.
10월이다. 가을이다. 다른 여자들은 봄을 타지만 나는 가을 타는 여자라 센치한 척 한 번 해봤다.

by 遊異 | 2009/10/28 23:12 | 외계인 지구 정복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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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르메리아 at 2009/10/29 00:27
좋은 가게지만 뭐랄까, 하나의 특정한 공간이었다는 느낌이 강하네요. 사라진 것도 아쉬워할 일이 없다는 것도 씁쓸합니다.
Commented at 2009/10/29 00: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pouty at 2009/10/29 16:39
헙... 걱정하시던 곳이 결국 사라지고 말았군요 ㅠ.ㅜ
새로 가시는 곳에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길...
Commented by LaJune at 2009/11/11 23:22
그 전당포에는 주로 명품들이 올 터이니 그런 외모를 갖추어야 할지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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